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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풍경

Deferred Landscape

나미나: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

안소연

미술비평가

나미나의 <침묵의 나선>(2018)은 어떤 베일에 가려진 희미한 장면처럼 알 수 없는 낭만적인 정서를 표면에 드러내면서 동시에 박제된 침묵처럼 그 안에 가두고 있는 간극을 일깨우곤 한다. 두 개의 화면은 나란히 연결된 채로, 같은 바다를 다른 자리에서 비추고 있다. 움직임을 담은 영상과 정지되어 있는 장면이 서로 겹쳐 있고,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풍경에서 들리는 소리와 그 위에 그것과 별개의 자막이 또한 서로 겹쳐 있다. 이처럼, 한 장소에 대한 몇 가지 시차(時差)를 한데 중첩시켜 놓은 <침묵의 나선>은 괌을 배경으로 한다. 이보다 앞서, 나미나는 먼저 제주도 강정마을과 일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American Village>(2016)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어서 괌을 배경으로 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2018) 시리즈를 제작했고, <침묵의 나선>은 그 일부다. 사실, <American Village>와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는 제주-오키나와-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큰 흐름을 서로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작업의 여정을 가늠케 하기도 한다.

나미나는 관광지로 잘 알려진 섬들을 방문하여 관광객의 시선으로 조망하듯 현지 풍경과 장소들을 촬영했는데, 그 시선은 공허할 정도로 아무 말 없이 현실의 표면을 훑고 지나간다. 그 공허함이 때때로 영상에 집중시키는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시선을 쫓다보면 어떤 순간에 아름다운 풍경들의 움직임과 병치되는 정지된 형상들의 수수께끼 같은 신호들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 안에서 그것과 시차를 갖고 존재하는 이 낯선 형상들은, 어쩌면 그가 세 개의 섬에서 찾으려 했던 오래된 기억의 잔해들일지도 모른다. 나미나는 마치 그 섬들의 깊은 무의식과 대면이라도 하려는 듯, 현재의 풍경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의 잔해를 찾아 그 기억에 최면을 건다. 이렇듯, 현재의 풍경을 멀리 조망하는 관광객의 시선과 과거로 회귀하려는 분열적인 시선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침묵의 나선>은, “현실”이 내면화하고 있는 여러 시차들을 뚜렷하게 환기시킨다.

해변에서 일몰이 불어넣는 이국적인 향수(nostalgia)를 화면에 담은 <침묵의 나선-건 비치>(2018)와 일렁이는 바다 위의 물결을 촬영하여 실제 속도 보다 느리게 재생시킨 <침묵의 나선-돌고래를 찾아서>(2018)는, 그 풍경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시차들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간혹 정지된 화면 혹은 움직임의 간극들이 다시 붙잡아놓는 파편적인 이미지들에 희미한 서사를 부여한다. 이때, 나미나는 소설가 김혜나에게 마치 그 서사를 맡기듯 글을 요청했는데, 김혜나는 「소리와 바다」라는 짧은 소설을 한 편 써서 그에게 보냈고 그 글은 <침묵의 나선>을 구성하는 두 개의 화면에 각각 분리돼 소리 없는 글의 자막으로 쓰였다. 소설 속의 “나”는 혼자 어느 해변 휴양지에 도착했고, 거기서 수잔이라는 맨발의 한 여인을 만났으며, 그의 평화로운 현재 풍경에 죽은 시체처럼 내재되어 있는 전쟁의 잔해물들을 보게 되었다. 이 심각한 모순 가운데, “나”는 태양이 내리쬐는 잔잔한 물결 아래 사라지지 않고 박제된 짐승처럼 영원히 머물러 있는 녹슨 전쟁 무기들을 해변의 부드러운 조약돌과 병치시키면서 둘 사이의 간극을 자신의 사적 경험 안에서 끊임없이 조정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나미나의 <침묵의 나선>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 섬에 내재된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한 은폐 기억을 되살린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통치와 전쟁의 폭력성을 함의하고 있는 “괌”을 배경으로 하여, 그는 평화로운 휴양지의 현실을 가로지르고 있는 “침묵”의 형상들(원주민 차모로족, 사용이 정지된 대포, 녹슨 무기, 전쟁 박물관 등)에 대해 그것이 표상하는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되살림으로써 현재의 풍경을 다시 지연시킨다. 이는 마치 한 주체의 기억이 어떤 사건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코드화되는 심리적 맥락과 비슷하게, 나미나는 이미 실효성이 사라진 박제된 무기들에 주목함으로써 현재의 평화로운 풍경에 서서히 파열을 일으킨다. 폐허와도 같은 전쟁의 잔해와 경이로운 자연 풍경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시공간을 초월한 숭고한 경험으로 위장시켜 놓지만, 사실 그 아래 은폐된 죽음과 폭력의 공포는 이 뜻밖의 과도한 현실의 안도감과 병치될 때 실재하는 징후로 불쑥 나타나게 된다. 나미나는 이렇듯 자연경관이 빼어난 아시아의 섬들에 주둔해 있는 미군 기지들을 직접 찾아가 조사하면서, 현실에 은폐되어 있는 전쟁의 기억들을 되살려내 현재의 풍경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며 다시 살펴왔다.

특히, 그는 특유의 “영상회화”를 통해 지연된 작용에 대한 시간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유하면서 작업에 끌어들이려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나미나는 현장에서 직접 관광객의 시선으로 짧고 간단하게 촬영해 온 영상들을 가지고 몇 번이고 다시 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떤 한 장면, 그러니까 촬영한 영상에서 정지된 것처럼 현실의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곧바로 정지시켜 회화로 옮기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는 이 둘(영상과 회화)을 결합시켜 “영상회화”라 이름 붙였다. 그러한 구조를 통해, 연속과 정지, 현재와 과거, 현실과 기억 등 서로 상이한 요소들을 병치시킴으로써 나미나는 그가 낯설게 여겨왔던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시도들을 모색해 왔다. 예컨대,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 시리즈 중에서, <8795 태평양 0초/1분3초>(2018), <8763 아산 50초/1분>(2018), <8051 라이딩덕 6초/1분35초>(2018) 등과 같은 일련의 회화 연작은 작품 제목이 함의하는 바와 같이 모두 촬영된 영상의 한 순간을 정지시켜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것은 <침묵의 나선>과 같이 영상과 회화를 겹쳐 놓는 경우도 있고, 이번 전시에서와 같이 회화만 따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연속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정지된 순간을 포착한 이 회화의 장면은, 사실 은폐된 기억을 내면화하고 있는 현재의 지연된 풍경의 정체성과도 비슷하다. 나미나는 그 역설적인 지점을 회화 혹은 그리기의 행위로 또 한 번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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