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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불편함과 상이한, 
두 번째 불편함에 대하여  

나미나 개인전 <Sun Cruises>, 신촌극장_2019

김현주

독립큐레이터

*

나미나 작가는 촬영한 영상 중에서 하나의 클립을 그려 영상과 회화를 오버랩시키는 방식인 ‘박제된 그림으로 완성된 서정적 영상회화’ 작업을 전개 중이다. 2012년 제주 강정을 시작으로 오키나와, 괌, 필리핀, 2020년 방문 예정지인 하와이까지, 침략지와 휴양지 의미 모두가 중첩된 〈섬들의 연대〉 전시를 목표로 한다. 미국의 일본 점령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AMERICAN VILLAGE》(2016)에서는 서정적 영상회화의 영상 속에 회화가 편입되어 의도한 특정 시간대에 영상과 회화가 조응했다. 미국령 괌을 찾은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2018) 전시에서 〈침묵의 나선-건비치〉와 〈침묵의 나선-돌고래를 찾아서〉는 좌우 두 개의 패널로 설치되고 두 개의 영상 채널이 스크리닝 되었다. 프로젝터가 켜지면 영상은 회화 위에 투사되고 프로젝터가 꺼질 때 회화가 드러나는 구조로 회화가 스크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또한 물질로 전시장에 드러났다.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에는 여덟 개의 회화 혹은 회화가 오버랩되는 영상이 전시되었다. 2018년 작업까지는 작가의 포트폴리오와 편집영상, 전시설치장면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의 작품을 접했을 때 정연해서 오는 불편함이 생겨났다. 흔들리다가 포개어지거나 수 초간의 시간차를 두고서 겹쳐지는 회화와 영상의 맞아떨어짐이 서정적 영상회화라는 작업 소개와 그 과정에는 적합하지만 작가가 이 작업들에 매진하는 주제 의식에 적확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버렸다. 작가와 만난 자리에서 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내 언어가 거칠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거칠었기 때문에) 작가가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계절이 지나 이제 말이 아닌 글로 작가에게 생각을 건넬 기회를 얻었다. 이제부터는 2019년 신촌극장에서의 《Sun Cruises》를 접한 시점부터의 이야기다. 


**

극장 기능을 하고 극장식 기능 연출이 가능한 신촌극장에서 하루 2-3회차 상연의 형식으로 진행된 《Sun Cruises》는 상연이 시작되기 전후에 관객이 공간에 배치된 영상 다섯 개를 둘러보고 무려 256×380㎝에 달하는 회화를 감상할 수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으며 가판대 형태의 좌대에는 관광지에서 흔히 보이는 기념엽서와 기념 클립, 기념 병따개의 형태로 제작된 오브제가 놓여 있었다. 상연이 시작됨을 알리는 고지와 더불어 개폐형 창문을 닫아 극장이 암전되고 회화 작품은 곧 영상 스크린으로 기능이 전이된다. 회화는, 그러나 망가진 스크린이 된다. 스크린 되기가 불가능해진다. 장지 가득 필리핀을 찾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보이는 진노랑색 오픈형 버스를 그린 회화는 기능에서 스크린이 되었음에도 33분 30초에 달하는 영상 러닝 타임 내내 한 치도 빛의 지지체가 되지 않고 형상의 사라짐 없이 지독히 명징하게 남아 있다. 이전까지 서정적 영상회화의 방식인 영상의 한 장면을 취한 클립으로 포개어짐 없이 끝까지 회화로 산다. 작가는 ‘느리게 사고하고(습관적 영상 기록물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생각하는) 천천히 표현하는(한국화) 두 가지 성향’을 작업에 드러낸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전작(前作)에서 사고와 표현이 회화가 영상에 투사될 때에 다소 밀리고 영상이 투사되지 않을 때 오롯해지는 길항의 힘겨루기를 벌였다면 이제 회화가 영상에 무관하게, 그리고 영상이 몇 겹에 걸쳐 레이어가 형성되는 형식과도 무관하게 회화로 남는 양상이 발생한다. 물리적 지지체로의 용도 전환조차 (의도적으로) 실패한 상황에서 회화 위로, 스크린으로 관광객의 시점 이동의 흐름과 동일할 창밖 풍경이 흘러가고 그 위로 한낮의 빛이 어른거리는 물결이 중첩된다. 사실 위와 아래는 큰 의미 없다. 총 영상 상연 시간 내내 몰입이란 없다. 여기서 형식과 내용의 구분은 사실 무의미하지만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몰입은 철저히 방해받는다. 그 색을 형용하기도 어려운 트로피칼 칵테일과 이내 뚝뚝 떨어져 내릴 낙조가 전하는 이국 정서, 폐허의 애잔한 정조에 미처 젖어보기도 힘들게 전투에 쓰이고 남겨진 포(砲), 피부에 적당한 온도로 감길 야외 수영장 등이 앞과 뒤, 위와 아래로 어른거리며 사정없이 이어진다. 때에 따라서는 7-8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의 레이어가 몰아친다. 관광지에 대한 향수와 결전지이자 제국의 잔재는 한쪽으로 수렴됨 없이 파편으로 편집되어 흩어진다. 

영상에는 나미나 작가와의 협업에서 이소연 시인이 써내려간 텍스트가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제시된다. 분명 기능은 작품 안으로 들어온 텍스트이나 시어(詩語)에 가까웠다. 이건 시였다. 

나는 여섯 살에/철조망에 걸려 찢어진 뺨을 가졌다/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두었을까/…/꿰매지 못한 뺨/철을 바다 가까이 두는 게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찢어진 뺨, 꿰매지 못한 뺨의 빗금지고 피비린내 스민 텍스트의 공감각은 구체적 신체에서부터 상징적 연상으로까지 전이를 일으킨다. 이 상징은 역사적으로는 명징하나 삶에서 부조리했고 지금까지 부조리한 섬(들)에서의 도륙에 가 닿는다. 때론 “과거는 끝났다 미래 밖에 없다”는 선언적 목소리가 개입하고 다른 화자의 간접화법으로 “살아 있으라, 그러면 너희는 영웅이 될 것이다!”라는 읊조림이 등장하는데 시어는 곤궁과 도리 없음으로 기울기도 하고 해결 불가능한 역설을 일컫는 아포리아(aporia)가 가득차고 넘쳐 미래에서 온 과거의 노파처럼 묵시록(apocalypsis)을 이룬다. 

어떤 바다는 흔들어 깨워도 눈을 뜨지 못하지/…/그러나 백사장엔 옛날을 팔아서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망자들은 더 이상 망가질 게 없어서 천국에 산다

 

필리핀 그곳의 현재에 나 혹은 작가 (혹은 작가가 요청한 목소리), 과거의 그들, 과거를 침범한 그들, 이 모두를 때로는 부분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한 뭉텅이로 편집한 영상과 영상에 뒤지지 않고 존재를 발휘하는 회화, 그리고 영매의 목소리로서의 내레이션과 텍스트로 인하여 극장에는 또 다른 시제의 섭입(攝入)이 이루어진다. 겹쳐지고 포개어지는 오버랩의 양상이 《Sun Cruises》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듦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이제, 새 불편함이 생겼다. 다만 이제는 정연하지 않아서 적확해진 불편함에 반가워진다.

*** 

나미나 작가의 《Sun Cruises》의 기저로 제주, 오키나와, 괌, 필리핀, 하와이로의 지정학적 쟁점과 역사를 부러 소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곳이 제주 강정이든, 오키나와든, 하와이든 그 장소성에 대한 서술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 〈섬들의 연대〉가 당도할 예술적 군도의 배치와 하나의 섬을 거쳐 궤적을 그릴 때마다의 변이가 기대될 뿐이다. 따라서 작가가 작업의 의도로 이미 밝히고 있는 바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동어반복 할 이유가 없다. 사회학적 의미부여와 작품이 생산되고 배치되고 보고 읽히는 바는 순순히 오버랩 되지 않는다. 한편 나미나 작가에게 다큐멘터리 작가 성향의 채록자의 임무를 부여할 생각도 없다. 작가의 시대정신이 작품으로 발현된다는 주체적 예술가 상에 작가를 대입할 의향도 없다. 현장성과 고발성의 농도가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가름할 계제가 아니라고 본다. 작가의 작품 활동을 활동가로서의 임무로 치환할 생각도 없으며 활동의 심리적 기저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겠다. 더불어 영상이나 회화 장면의 외재적 표피에 대해 그 내용을 언어로 번역하는 절차도 불필요해 보인다. 그 언어는 영상만큼이나, 영상에 삽입된 텍스트만큼이나 분절되어 쓰여질 테니 해석을 원하는 이에게는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효용이 없는 일에 불과하다. 

《Sun Cruises》는 고전적인 분석에 기대어 본다면 극장식 기능 연출에서 조장된 브레히트의 몰입을 방해하는 소격 효과에 대입 해 볼 만하다. 실제로 33분 30초의 〈Sun Cruises〉가 종료되면 극장에 조명이 켜지며 노래방 화면을 연상시키는 관광지 풍경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릴 법한 음악이 동반되는 〈완벽한 세상〉 영상이 영상회화의 상연 과정에서 이미 불가능했던 몰입을 마무리의 과정에서 한 번 더 완전히 좌절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소격 효과가 시간예술, 특히 극에서의 감정이입과 감정동화에 반하여 무대와 관객을 격리시키고 몰입을 방해시키는 개념이라면 《Sun Cruises》가 극의 양태를 따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 극장 기능을 하고 극장식 기능 연출이 가능한 신촌극장에서의 수고로움―회화를 스크린 기능을 위해 틀을 짜서 세우고, 계단식 관객 좌석을 만들고, 상연을 알리는 시그널을 차용하는 등―은 철저히 극의 양태와 절차에 근접함으로 인해서 자율적인 전시 관람보다 관람의 효율성과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는 발휘했으나 이는 일차적 효과에 그친다. 내게는 공연, 연극, 음악과 같은 시간 예술임이 분명한 예술 형식과 《Sun Cruises》가 취하는 극의 차용은 다르게 읽힌다. 미술은 공간예술이고 상술한 장르는 시간예술이라는 장르별 특이점과 배타성을 거론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 구별은 단어와 그림간의 경쟁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짚은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쟁점에 가깝다.  

그로이스는 그림을 필두로 개념미술 이래 텍스트 형식의 미술이나 발화된 말을 녹음하여 설치한 미술 등을 거론하며 특정한 말하기 욕구를 암시하는 예술의 등장을 『반철학 입문』에서 다룬다. 레싱이나 그린버그가 강조한 바를 체현해 낸, 모든 표현이 제거된 미술 작품이 언어적 금욕을 추종할 때 평평해진 예술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이미지 자체의 무의식과 시학(詩學), 미디어 아래의 실천을 무화시키지 않을,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경계 넘기를 거세시키지 않는 분석이 필요하고 태도가 요구됨이 그로이스의 메시지다.* 《Sun Cruises》로부터 도래한 불편함은 《Sun Cruises》가 말하지 않기 때문에 동반하는 모호함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이기에 가능한 즉 그로이스의 표현대로라면 ‘말하려는 욕구의 찡그러진 얼굴’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불편함이다. 텍스트와 연동된 미술에 대한 해석을 시간이 투여되었다는 이유로 시간예술에 양도하지 않고 오히려 더 충실히 작가가 표방하는 서정적 영상회화에 견주어 독해해서 향후 과제로 남은 〈섬들의 연대〉를 파상형으로 펼쳐내지 않고 준비할 수 있는 여지를 내 ‘말하려는 욕구’를 통해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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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나 작가는 ‘개인이 세상의 통념을 바꾸기는 너무나 버겁고 힘들다. 그리고 내 무의식은 인간의 유전자를 타고 흐른다…나는 죽은 적이 몇 번 있던 것 같다’라는 구절을 전시 중에 하는 낭독회에 수록된 에세이에 쓰고 있다. 시어에 친화력이 있어 보이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소연 시인과의 교류를 확인하며 서정적 영상회화는 이미 시작했으나 이제 더 가열차게 내파(內波)의 힘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서정(抒情)이 유순해야할 일말의 이유도 없다. 끝끝내 불편하게 하고 불편하다는 이들의 속내를 더 불편하게 헤집고 쓰라리게 만들기를, 불편함을 발화한 가까운 이들이 서넛, 너덧 더 있기를. 상처의 종류에는 자상, 창상, 찰과상, 타박상 등이 있다고 배웠는데 말하자면 작가가 찾았고 찾아갈 그곳들처럼 경계가 너덜너덜한 형태로 크게 찢어진 상처인 열상(熱傷)에 준할 불편함을 전해 줄 작품을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 

* 보리스 그로이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클레먼트 그린버그, 마셜 맥루한」, 『반철학 입문』, 서광열 옮김,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2018, pp. 286-287.

Sun Cruises

​작가노트_2019

전시 준비를 하며 몽롱한 정신으로 뭔가를 뚝딱 거리다 잠시 잠이 들었다. 익숙한 일이다. 다만 전시를 준비하며 한 여름은 가을이 되었고 찬 바닥의 기운이 몸 안으로 침범해 어떤 기억들을 불러냈다는 점이 달랐다.
 

어렸을 적, 무딘 감각 속에서 수많은 폭력들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나에게만 닥친 슬픔이라 생각하다가도 때론 이런 아픔도 없으면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도 생각했던 것 같다. 철이 일찍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종말을 머릿속에 그렸다. 


중학교 때 추리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그 중 ‘신비소설 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온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았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동물을 학대하거나 좁은 우리에 가둬 자유롭지 못하게 하면 독이 쌓여 악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동물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인간이 미울지 상상했다. 치킨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먹을 때마다 치킨이 되어 생각한다. 그들에게 나는 나쁜 인간이로구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 자격이 되는가?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이 영화 혹성탈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의 애완동물이 되는 것. ‘반려묘’라는 표현도 입장이 바뀌면 끔찍하다. 그들을 내 집에 가두고 부모 형제와 헤어지게 만들고 마음대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행위들이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난 고양이와 10여년을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이런 상황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개인이 세상의 통념을 바꾸기는 너무나 버겁고 힘들다. 그리고 내 무의식은 인간의 유전자를 타고 흐른다.


이런 기억의 파편들은 내가 폭력에 얼마나 무지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스스로 너무나 잘 보여준다. 나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존재한다. 그것은 마음을 상처 입히고, 때론 죽게 만든다. 나는 죽은 적이 몇 번 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죽인 적도 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살고 싶어 하는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또 죽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죽어도 상관없다. 다만 고통스럽게 죽고 싶진 않다. 고통이 뭔지 아니까. 내가 느끼는 아픔과는 비교도 안 될 아픔이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 아픔들은 자주 내게 전이되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폭력 속에 갇힌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나는 유독 계란과자를 즐겨 먹었다. 어느 날, 동네 친구가 계란과자를 병아리로 만들어서 많이 먹으면 내가 병아리가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그 후로 계란과자를 멀리했는데, 내가 병아리를 죽이면서 심지어 병아리가 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계란과자는 성장해서 나를 이 곳 미군기지가 있는 섬들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기억도 안날만큼 시작의 고리는 많지만, 결정적인 것은 강정마을에 가면서 부터이다. 나와는 연이 없을 것 같던 곳에 친구가 생기고 내가 잠시 머물 공간이 생기면서 그 곳의 일은 남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됐다. 이런 일들이 강정뿐만 아니라 다른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내 발이 자연스럽게 그곳들을 내딛으며 걷게 만들었다. 


이 경험으로부터 나는 무관심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을 찾아다니며 공감과 혼란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듯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중 미군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강정의 여러 상황들을 습관적으로 영상에 담았고 그것이 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향점을 제시했다. 2016년, ‘섬들의 연대’가 활동하고 있는 ‘섬’ 오키나와에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이 동양의 군사 교통 요지가 될 만한 섬들에 행하는 제국주의적 폭력을 다룬 <AMERICAN VILLAGE>시리즈를 작업해왔다. 2018년, 괌을 다녀온 후 작업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시리즈가 나왔다. 올해에는 필리핀을 다녀온 후 Clark, Angeles City, Pinatubo Mt.을 담은 <Angeles City>와 Subic, Olongapo, Corregidor Island, Manila Bay를 담은 <Sun Cruises>를 작업했고, 필리핀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적실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이번 두 작품에서는 이소연 시인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영상 작업을 진행했고 진행 과정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했다. 장소(섬)마다 폭력이 드러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느끼는 감정과 결과는 달랐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영상회화와 설치의 세부적인 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 변주들을 읽어내주길 바라며 작업을 진행했다. 내 여정은 아직 멀었다. 이 여정에 계속 함께 고민하고 나아갈 사람들이 생기길 바란다. 관광지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장소는 바로 시위 현장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어떤 장소이다.

겹침의 세계

나미나 개인전 <Sun Cruises> 전시서문_2019

이소연

​시인

여기 그림과 영상과 시가 있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것들 사이에 사람이 있고 유적이 된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속에 숨은 영혼을 불러보는 언어가 있다. 빛이 켜켜이 쌓여가고 이미지가 이미지를 덮치고 소리들이 첩첩으로 흘러간다. 흘러가고 쌓이는 순간순간, 내내 어긋나있던 우리는 서로 포개어진다. 그리고 다시 번진다. 이토록 아름다운 폐허에 대해, 이토록 투명한 악몽에 대해 우리는 서로 묻고 답하였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와서 서로를 만났다. 겹침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시와 그림을 가지고 만났다. 어떤 날은 내가 영상을 보면서 시를 썼고 어떤 날은 미나가 시를 읽고 말해지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미나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썼다. 우리의 편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꿈을 꿨다. 미나의 그림 속이었다. 커다란 새를 타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 무거운 침묵의 세계를 날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꿈속의 날개가 미나의 그림 위에 겹쳐진 적 있다고 믿는다. 겨울이 없으면 봄이 없듯 음악이 없으면 악기가 없듯 잠이 없으면 꿈이 없듯 미나의 작업으로부터 나의 문장들은 태어났다. 이 겹침의 연쇄를 통해 마주한 진실들은 참혹하지만 아름다웠다. 미나는 아름다움과 참혹함이 어떤 방식으로 조우하는지를 아는 사람 같다. 세계의 진실은 각기 그때마다 다르게 존재할 것이므로 결코 간단하거나 명료하지 않다. 미나는 일치했다고 믿는 순간 어긋나고 마는 세계의 실존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놀라움을 준 아티스트이다. 그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군기지의 흔적을 찾아 떠났지만 자신이 종국에는 피상적인 눈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신중함을 좋아한다. 전염성 강한 신중함.

조화로운 덧댐의 순간이 오아시스처럼 드문드문 등장하는 가운데 대개의 영상은 그림을 지우고 그림은 영상을 지운다. 동시에 소리와 시가 뒤섞인다. 이는 절대로 뭉뚱그릴 수 없는 것을 쉽게 뭉뚱그리려는 세상의 일들과 닮아 있다.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이 지움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수없이 덧칠된 잔상으로 남아, 결과적으로 지울 수 없는 진실을 형상화한다.

무엇보다 미나는 협업이라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다른 장르 간의 겹침을 유도한다. 이러한 겹침의 겹침을 유도하는 방법론은 아주 짧은 순간의 일치를 통해 불일치를 강화하고 불일치를 통해 일치를 강화하도록 치밀하게 설계 되어있다. 미나가 읽어낸 세계의 복잡성이 이런 지속적이고 뚜렷한 방법론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이 반갑다. 미나의 이 순연한 의지로서의 높고 쓸쓸한 작업이 흔들림 없이 계속 되기를 바라며. 

InSight Onsite

기획 공모전 <Insight Onsite> 전시서문_2019

추희정

​오픈스페이스 배 큐레이터

나미나는 휴양지로 알려진 섬들을 직접 찾아가 평화로운 풍경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영상회화로 포착하는 작업을 해오고있다. 이번에는 과거 미군기지의 흔적을 아물지않는 상처처럼 품고 사는 필리핀 앙헬레스 시티를 담았다. 사건을 무심히 바라보았을 자연은 그대로인데, 분명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은 개인 각자의 기억으로 흩어진다. 나미나는 그 서사의 남겨진 흔적을 수집한다. 그리고 그 위에 은유의 시를 덧입히고, 포착된 장면의 한 순간을 그림으로 옮긴다. 뒤덮혀진 역사와 파편화된 개인의 이야기가 흩어진 장소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의 단면을 들춰낸다.  (부분 발췌)

지연된 풍경

Deferred Landscape

나미나 개인전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 서교예술실험센터_전시서문_2018

안소연

미술비평가

나미나의 <침묵의 나선>(2018)은 어떤 베일에 가려진 희미한 장면처럼 알 수 없는 낭만적인 정서를 표면에 드러내면서 동시에 박제된 침묵처럼 그 안에 가두고 있는 간극을 일깨우곤 한다. 두 개의 화면은 나란히 연결된 채로, 같은 바다를 다른 자리에서 비추고 있다. 움직임을 담은 영상과 정지되어 있는 장면이 서로 겹쳐 있고,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풍경에서 들리는 소리와 그 위에 그것과 별개의 자막이 또한 서로 겹쳐 있다. 이처럼, 한 장소에 대한 몇 가지 시차(時差)를 한데 중첩시켜 놓은 <침묵의 나선>은 괌을 배경으로 한다. 이보다 앞서, 나미나는 먼저 제주도 강정마을과 일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American Village>(2016)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어서 괌을 배경으로 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2018) 시리즈를 제작했고, <침묵의 나선>은 그 일부다. 사실, <American Village>와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는 제주-오키나와-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큰 흐름을 서로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작업의 여정을 가늠케 하기도 한다.

나미나는 관광지로 잘 알려진 섬들을 방문하여 관광객의 시선으로 조망하듯 현지 풍경과 장소들을 촬영했는데, 그 시선은 공허할 정도로 아무 말 없이 현실의 표면을 훑고 지나간다. 그 공허함이 때때로 영상에 집중시키는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시선을 쫓다보면 어떤 순간에 아름다운 풍경들의 움직임과 병치되는 정지된 형상들의 수수께끼 같은 신호들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 안에서 그것과 시차를 갖고 존재하는 이 낯선 형상들은, 어쩌면 그가 세 개의 섬에서 찾으려 했던 오래된 기억의 잔해들일지도 모른다. 나미나는 마치 그 섬들의 깊은 무의식과 대면이라도 하려는 듯, 현재의 풍경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의 잔해를 찾아 그 기억에 최면을 건다. 이렇듯, 현재의 풍경을 멀리 조망하는 관광객의 시선과 과거로 회귀하려는 분열적인 시선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침묵의 나선>은, “현실”이 내면화하고 있는 여러 시차들을 뚜렷하게 환기시킨다.

해변에서 일몰이 불어넣는 이국적인 향수(nostalgia)를 화면에 담은 <침묵의 나선-건 비치>(2018)와 일렁이는 바다 위의 물결을 촬영하여 실제 속도 보다 느리게 재생시킨 <침묵의 나선-돌고래를 찾아서>(2018)는, 그 풍경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시차들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간혹 정지된 화면 혹은 움직임의 간극들이 다시 붙잡아놓는 파편적인 이미지들에 희미한 서사를 부여한다. 이때, 나미나는 소설가 김혜나에게 마치 그 서사를 맡기듯 글을 요청했는데, 김혜나는 「소리와 바다」라는 짧은 소설을 한 편 써서 그에게 보냈고 그 글은 <침묵의 나선>을 구성하는 두 개의 화면에 각각 분리돼 소리 없는 글의 자막으로 쓰였다. 소설 속의 “나”는 혼자 어느 해변 휴양지에 도착했고, 거기서 수잔이라는 맨발의 한 여인을 만났으며, 그의 평화로운 현재 풍경에 죽은 시체처럼 내재되어 있는 전쟁의 잔해물들을 보게 되었다. 이 심각한 모순 가운데, “나”는 태양이 내리쬐는 잔잔한 물결 아래 사라지지 않고 박제된 짐승처럼 영원히 머물러 있는 녹슨 전쟁 무기들을 해변의 부드러운 조약돌과 병치시키면서 둘 사이의 간극을 자신의 사적 경험 안에서 끊임없이 조정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나미나의 <침묵의 나선>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 섬에 내재된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한 은폐 기억을 되살린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통치와 전쟁의 폭력성을 함의하고 있는 “괌”을 배경으로 하여, 그는 평화로운 휴양지의 현실을 가로지르고 있는 “침묵”의 형상들(원주민 차모로족, 사용이 정지된 대포, 녹슨 무기, 전쟁 박물관 등)에 대해 그것이 표상하는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되살림으로써 현재의 풍경을 다시 지연시킨다. 이는 마치 한 주체의 기억이 어떤 사건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코드화되는 심리적 맥락과 비슷하게, 나미나는 이미 실효성이 사라진 박제된 무기들에 주목함으로써 현재의 평화로운 풍경에 서서히 파열을 일으킨다. 폐허와도 같은 전쟁의 잔해와 경이로운 자연 풍경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시공간을 초월한 숭고한 경험으로 위장시켜 놓지만, 사실 그 아래 은폐된 죽음과 폭력의 공포는 이 뜻밖의 과도한 현실의 안도감과 병치될 때 실재하는 징후로 불쑥 나타나게 된다. 나미나는 이렇듯 자연경관이 빼어난 아시아의 섬들에 주둔해 있는 미군 기지들을 직접 찾아가 조사하면서, 현실에 은폐되어 있는 전쟁의 기억들을 되살려내 현재의 풍경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며 다시 살펴왔다.

특히, 그는 특유의 “영상회화”를 통해 지연된 작용에 대한 시간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유하면서 작업에 끌어들이려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나미나는 현장에서 직접 관광객의 시선으로 짧고 간단하게 촬영해 온 영상들을 가지고 몇 번이고 다시 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떤 한 장면, 그러니까 촬영한 영상에서 정지된 것처럼 현실의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곧바로 정지시켜 회화로 옮기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는 이 둘(영상과 회화)을 결합시켜 “영상회화”라 이름 붙였다. 그러한 구조를 통해, 연속과 정지, 현재와 과거, 현실과 기억 등 서로 상이한 요소들을 병치시킴으로써 나미나는 그가 낯설게 여겨왔던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시도들을 모색해 왔다. 예컨대,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 시리즈 중에서, <8795 태평양 0초/1분3초>(2018), <8763 아산 50초/1분>(2018), <8051 라이딩덕 6초/1분35초>(2018) 등과 같은 일련의 회화 연작은 작품 제목이 함의하는 바와 같이 모두 촬영된 영상의 한 순간을 정지시켜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것은 <침묵의 나선>과 같이 영상과 회화를 겹쳐 놓는 경우도 있고, 이번 전시에서와 같이 회화만 따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연속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정지된 순간을 포착한 이 회화의 장면은, 사실 은폐된 기억을 내면화하고 있는 현재의 지연된 풍경의 정체성과도 비슷하다. 나미나는 그 역설적인 지점을 회화 혹은 그리기의 행위로 또 한 번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노트_2018

부모님의 무관심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던 시간이 많았다. 이 기억으로 TV와 주변에서 불합리한 일들을 보면 슬프고 분노하기가 잦았다. 분노로 시작한 감정들은 머리와 가슴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리지지 못하고 쌓여온 이 잔여물들이 나를 다른 사회문제 속으로 다가가게 했고, 이 접촉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연장됐다. 무관심과 더불어 돈에 인색하지 않음이 공존했던 부모님 덕에 항상 만화책과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었고, 만화와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와 영상이 나의 주된 재료적 기법이 된 것도 이와 연결된다.

내가 겪었고, 주변에서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폭력과 상처들을 습관처럼 영상에 담고, 자료들을 모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폭력을 경험하지만, 모두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표면적으로는 오히려 좋게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상황들을 시각화, 청각화하는 과정에 몰두해 있다.

2016년 이전에는 애니메이션, 다큐적 영상, 설치, 회화 등 다양하게 작업했다면, 작업적 방황기를 지나 2016년부터 영상과 한국화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기법들은 따로, 때론 같이 움직이게 되는데, 영상과 회화, 이 둘의 오버랩을 통해 여러 층위로 존재하는 시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상이 촬영된 현장의 시간, 그 영상 속 정지된 화면이 회화로 옮겨진 시간, 같은 현장에서 파생되어 분리된 이 둘의 시간은 전시장 안에서 다시 겹쳐지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는 단절이 아닌 불가분의 관계임을 상기시키며 작업한다. 본인은 이를 ‘영상회화’라 부르기로 한다. 본인이 느리게 사고하고(습관적 영상 기록물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생각하는) 천천히 표현하는(한국화) 두 가지 성향이 작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 시리즈로 하고 있는 작업 중<AMERICAN VILLAGE>는 미국이 동양의 군사 교통 요지가 될 만한 섬들에 행하는 폭력의 과거와 그에 투쟁하는 현실을 다룬다. 지금까지 제주도 강정마을, 일본 오키나와, 미군령 괌, 세 섬에 관한 작업을 했다. 앞으로 계속 섬들을 돌아다닐 예정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권력의 힘이 나라마다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아름다운 풍경과 관광 이미지를 작품에 담으며, 그 이면을 이야기하려 한다.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무엇에 대한>

나미나의 <AMERICAN VILLAGE> #3 괌

나미나 개인전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 전시서문_2018

이나연

​독립 큐레이터, 씨위드 편집장

2012년부터 구상,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섬 을 둘러싼 폭력을 귀와 눈으로 드러내는 일을 시작한다.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오랜간 공권력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제주의 강정마을, 일본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모여 있는 오키나와, 오랫동안 다른 나라와의 다툼으로 고통받았던 '차모로' 원주민이 사는 미군령이 된 괌. 이렇게 세 섬을 둘러싼 폭력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취재해왔고, 작품으로 한 지역씩 소개해왔다. 제주, 오키나와, 괌, 이 세 섬들의 공통점은 아시아 지역의 군사적인 교통의 요지가 될 만한 지역들임을 이용, 미군이 거점으로 삼은 지역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이들 섬들이 품은 폭력의 과거를 추적하고, 그 안에서 투쟁하며 싸우는 이들을 찾아 기록하며 <AMERICAN VILLAGE>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영상의 한 클립이 하나의 그림이 되는 영상 회화는 전시장에서 영상이 겹쳐져 비춰지면서 독특한 효과를 자아낸다. (부분 발췌)

개인전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_작업노트_2018

미국의 제국주의적 권력의 힘이 동양의 군사 교통 요지가 될 만한 섬들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다룬 <AMERICAN VILLAGE>시리즈 작업을 해왔다. 작가 본인이 직접 보면서 기록한 자료가 기억의 형태로 바뀌며 물질화된다. 촬영을 시작하고 정지했던 1Clip의 영상에 하나의 박제된 그림이 완성되고, 이 두 매체를 오버랩 시킨다. 영상은 한지그림의 질감을 얻고 그림은 영상의 움직임을 얻는다. 이를 서정적 ‘영상 회화’라 부르기로 한다. 제주도, 오키나와, 괌에서 실존한 폭력의 과거와 그에 투쟁하는 현실을 대상화하여 ‘영상 회화’ 작업을 이어 나간다. 

이번 전시에서는 <AMERICAN VILLAGE>의 새로운 버전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를 선보인다. 제주도, 오키나와에 이어 방문한 관광 섬 ‘괌’은 미군령이면서, 실질적 주인은 ‘차모로족’이다. ‘괌’은 스페인과 일본에 땅을 빼앗겼던 역사가 있다. <침묵의 나선, 장지에 분채 위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210x148cm X 2, 36min 25sec, 2018>은 김혜나 소설가가 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써낸 이별의 상흔과 바닷속 작동하지 않는 무기들에 관한 글들이 영상과 함께 어우러진다.  다른 작업들과 함께 미군 기지가 있는 섬들을 조사하고 기록하며 이 시리즈를 계속할 예정이다. 관광지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장소는 바로 시위 현장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어떤 장소이다.

아침에 바라보는 바다는 차고, 깊고, 서늘해 보였다.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 수많은 색들이 그 안에 잠재해 있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던 내 삶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 어제 가보았던 전쟁박물관과 군기지가 드러나 보였다. 온통 잿빛인 이곳을 비추는 태양은 마치 붉은 동굴같아 보였다. 잔잔한 물결이 일고, 햇빛이 그 위를 비추어 모든 것이 붉고 어둡게 빛났다. 그 속에 잠든 녹슨 무기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것들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그냥 그 속에 잠들어 있는 거야. 수잔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사라지지 않겠지, 영원히. 이것들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영원히 머물러 있겠지. 내 안에서 끊임없이 구르고 굴러 조금씩 더 녹슬고, 무뎌지고, 둥글어지겠지. 나는 해변의 조약돌을 하나 주워 손에 쥐고 그 표면을 매만졌다. 거칠고 부드러운 부분이 동시에 다 느껴졌다. 그 조약돌을 손에 쥔 채, 나는 바닷물 안으로 조금씩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침묵의 나선, 장지에 분채 위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210x148cm X 2, 36min 25sec, 2018>_김혜나 <소리와 바다> 中

끊임없는 시도, On going

<on going>  전시서문_2018

​<AMERICAN VILLAGE>시리즈

추희정

​가나아트부산 큐레이터

전쟁이 더 이상 눈앞의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폭력성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때로 무관심 속에 아름답게 은폐되기도 한다. 나미나는 과거 미국이 군사적 요충지로 삼았던 제주도와 오키나와에 실존한 폭력의 잔상과 그에 투쟁하는 현실을 ‘영상 회화’작업에 담는다. 이로써 평화로운 관광지라는 장막에 가려진 상처를 들춰낸다. 나미나는 영상과 회화, 이 둘의 오버랩을 통해 여러 층위로 존재하는 시간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상이 촬영된 현장의 시간, 그 영상 속 정지된 화면이 회화로 옮겨진 시간. 같은 현장에서 파생되어 분리된 이 둘의 시간은 전시장 안에서 다시 겹쳐지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는 단절이 아닌 불가분의 관계임을 상기시킨다.  (부분 발췌)

​<AMERICAN VILLAGE>시리즈_작업노트_2016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의 이전 시리즈.

2012년부터 강정마을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습관적으로 강정의 여러 상황들을 영상에 담았다. 그러다 2015년 용산 미군 기지에 대한 영상작업을 의뢰받은 계기와 2016년 ‘섬들의 연대’ 활동가 단체를 통해 미군 기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016년, ‘섬들의 연대’에서 활동하는 ‘섬’인 오키나와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이 동양의 군사 교통 요지가 될 만한 섬들에 행하는 제국주의적 폭력을 다룬 <AMERICAN VILLAGE>시리즈를 작업해왔다. 

제주도 강정마을, 일본 오키나와 등 동북아시아에서 실존한 폭력의 과거와 그에 투쟁하는 현실을 대상화하여 ‘영상 회화’ 작업을 이어 나간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권력의 힘이 나라마다 어떤 식으로 드러나고,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작가 본인이 직접 보면서 기록한 자료가 기억의 형태로 바뀌며 물질화된다. 촬영을 시작하고 정지했던 1Clip의 영상에 하나의 박제된 그림이 완성되고, 이 두 매체를 오버랩 시킨다. 영상은 한지그림의 질감을 얻고 그림은 영상의 움직임을 얻는다. 본인은 이를 서정적 ‘영상 회화'라 부르기로 한다. 

 

오키나와 관광지 <AMERICAN VILLAGE>의 대관람차를 보면서, 일본의 미군 기지 70% 이상이 있는 오키나와의 시위 현장과 대조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아는 사람만 아는, 느끼는 사람만 느끼는 이 시대의 혼란을 AMERICAN VILLAGE 대관람차를 내세워 보여준다. 대관람차를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여기는 바로 시위 현장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어떤 장소이다. 

​<나푼젤-NAPUNAEL>_작업노트_2017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생긴 POPUP팀의 전시이다. POPUP STORE는 ‘깔세’라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단기 대여 형태로 상가를 빌려 잠시 생겼다 사라진다.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전시공간을 ‘ 깔세’를 통해 빌리고 반짝 전시를 실험해보며 공공미술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작가는 전시 준비 기간 동안 허리디스크 파열로 노원구 소재의 기능을 잃어 버린 상가(쇼핑몰)에 70일을 갇혀 지내게 됐다. 대부분 누워 생활하며 회복 되는 동안 ‘상가’안의 ‘깔세’는 불안정한 경제상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이 있는 이 상가와 주변 ‘깔세 점포’들을 돌아다니며, 여기에 있는 본인을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정한 직업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꼈다. 지금 나의 경제적 불안정함은 척추에서 시작되었다. 척추와 척추를 구성하는 구조물(근육, 인대 등)이 불안정해지면 통증과 기능부전 등의 증상이 생기고 결국 인체의 중심역할을 하는 척추에 문제가 생겨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렇듯 주변 ‘깔세’ 점포의 역할이 불안정해지면 결국 중심상권의 기능이 상실되어 지역 경제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현대인들은 불안정한 척추로 허리통증을 자주 호소한다. 우리 주변 지역경제도 그렇다. 본인은 노원구 전시가 진행되는 ‘POPUP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깔세’와 ‘상가’, ‘불안정’과 ‘안정’의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공릉동 경춘선숲길에서 단기 ‘척추건강 운동’센터를 운영하며, 전시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운동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상가 꼭대기에 갇혀 70일을 보낸 나푼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지역 생태계 안정을 꿈꾼다.

**나푼젤이 병원에서 소비한 갈색 약통 안에는 병원 주변 노원구 ‘깔세점포’에서 산 물품이 들어있다. 하나씩 가져 갈 수 있다.

​<10.7km>_작업노트_전시서문_2016

이 작품은 공허하게 떠도는 말들과 현실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충동을 그린 영상설치 작업이다.

노원구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노원구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공약들이 다 지켜진다면 좋은 도시가 되겠다.’라는 상상에서 출발하였다. (나미나)

나미나는 노원구의 하천(당현천 2.6km, 중랑천8.1km)을 따라 그 지역에 대한 파편적 서사를 이어붙인 영상 작업으로 <10.7km>를 제작했다. 예컨대 그는 여러 협업자들과 함께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을 소재로 지역에 대한 10개의 단상을 각각 10문장씩 정리해 그 파편적인 문장들을 랩과 영상으로 엮어 표현했다. 언뜻 뮤직 비디오 혹은 지역 광고 영상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미나의 <10.7km>는 3채널의 영상에 거친 짜집기 편집과 파편적인 서사를 일체의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단면을 어떤 불안한 신호처럼 계속해서 흘려보낸다. (안소연, 미술평론가)

 

노원구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나미나는 중랑천을 중심으로 상계, 중계, 하계로 나뉘는 노원을 ‘천상계’, ‘천상계와 지상계를 잇는 중계’, 그리고 ‘사람이 사는 지상계’로 설정하고 당현천(2.6km)과 중랑천(8.1km)을 따라 10.7km를 걸으며 영상 퍼포먼스를 제작하였다. 3채널 영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상단 영상은 조선시대 시인 김시습이 수락산에서 100점의 시를 물 위로 흘려보낸 것에 착안하여 개천의 길이만큼 지역에 대한 10가지 단상을 10문장으로 만든 것에 기초한 작업이다.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 미지, 그리고 랩퍼 빅 사이즈(BIG SIZE)가 협업한 이 작업은 노원구의 현실과 이상을 담고 있다. 또다른 영상작업은 노원구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유세나 뉴스 영상을 ‘오토튠’ 프로그램을 이용해 목소리 톤을 조작하여 편집한 것이다. 상단의 10가지 단상의 랩과 하단의 오토튠 사운드는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이 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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